[컬럼,논단] 전미숙의 <아모레 아모레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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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해석과 크로스오버, 컨템포러리 댄스의 묘미_4]
전미숙의 <아모레 아모레미요>
추상과 은유, 새로운 질감으로 풀어낸 극장예술의 묘미
장광열_춤비평
현대무용의 묘미는 추상성에 있다. 그래서 춤이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몸 자체가 언어나 의미 대신 기호를
품고 있으니 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춤 매니아들은 그런 어려운 기호의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춤
공연을 즐긴다.
전미숙의 작품은 늘 추상성과 은유가 작품의 중심에 있다. <아듀 마이러브>와 신작 <아모레 아모레미요>
(7월 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자 2일 공연 관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아듀 마이러브>의 무대 전체는
약간 고리타분한 느낌도 들지만, 안무가에 의해 조율된 추상적 기호는 유머가 더해지면서 활력이 넘친다. 제사상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마무리 짓는 위트는 상상력의 백미이다.
반면에 대중가요를 사용한 장면은 약간 오버한 면이 없지 않았다. 작품이 극도로 추상적이고 어려울 때 그런 위트는
더 현실감이 있겠지만, 의미가 쉽게 다가오는 상황에서 그 같은 시도는 오히려 거북스러울 수 있다.
제사상에 있는 음식을 죄다 던져버리는 그 마음, 그것은 나이의 한계를 넘어 신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허세일 수도
있다. 제사상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안무가는 프로그램에 춤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춤을 포기하는 것, 마지막에 오케스트라 피트로 사라지는 붉은 정열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신작 <아모레 아모레미요>는 60분 길이의 장편이다. 안무가는 상당히 어깨에 힘을 넣고 시작했다. 하얗게 변한
상하수의 윙을 가린, 흰색으로 치장한, 여러 개의 문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의미의 확장이 충분히 감지되는 무대장치이다.
‘들어감’과 ‘나옴’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나 작품에서는 ‘들어감’만 강조하고 있으니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려는 듯하다. 수십 개의 흰색 문 사이에 놓인 검정 피아노는 ‘가정’을
의미하는 대명사 같다. 이 정도면 설명은 충분하다.
우선 무용수들의 개개인 기량이 뛰어났다. 그들은 LDP 공연에서 보여주던, 스타일화 된 움직임의 패턴으로부터 탈피하고
있었다. 이는 공연이 계속될수록 더욱 빛을 발했고 작품의 완성도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사기로 만든 찻잔의 달그락거림은 신경질적인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조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여자의 섬세함이기도
하고, 외로움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샤샤 발츠가 <The Body>에서 수십 개의 접시를 포개면서 내는 사운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육체성을 강조한 것과는 다른 발상이다.
찻잔과 길고 하얀 문, 그리고 검정 피아노만으로도 작품은 여성의 고독과 연결될 것이라는 낌새를 준다. 한창호의 솔로 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고혹적이다.
차진엽, 최수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움직임의 질감도 작품에 활력소가 된다. 춤이 문제풀이집이 아닐진데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세련된 무대미술만으로도 관객들은 즐겁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었다. 안무가는 관객이 생각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때론 그것이 중요한 작품 구성의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그 길이 지루함으로 일관된다면 안무가가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겠지만, 무조건
빠른 움직임이 재미를 주거나 집중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모레 아모레미요>의 중반부는
특별한 의미가 주어지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갈수록 긴장감은 짙어졌다. 무대 전체에 버티고 있던 문들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열리기 시작하면서
문밖의 사람들을 문의 안쪽 공간과 연결시킨다. 관계란 늘 해석을 필요로 한다.
관객의 해석이 무한대로 열려있도록 문의 장치는 그 의미가 다의적이다. 마치 문 안의 무대, 즉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하기도 하고, 문 안으로 결코 들어 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위치한 이들이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같기도 하다.
이어 피아노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어 여자들을 모이게 한다. 피아노 위에 올라가 있는 여자의 넋두리, 혼자 하는
여자의 넋두리는 춤 전체 내용을 정리하면서 춤이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를 건드린다. 현실과 관객의 상상이
중첩되면서 위트를 선사한 이 장면은 압권이다. 심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X새끼 떨어질 뻔 했잖아!’하는
무용수의 위트는 객석을 웃음바다로 몰아넣는다.
춤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알 수 없는 기호들로 들어차 있어도 마지막에 한 두 마디만 해주면 전체가 정리된다.
여자의 독백이 끝나자 남녀의 애증관계 뒤에 오는 남자의 유혹적인 춤, 몸을 뒤흔들면서 “아모레 아모레미오”
노래에 맞춰 추는 남성 무용수의 감성은 육감적이다.
혼자 끝없이 춤을 추는 남자, 거기에는 남자의 고독과 애수가 스며있으며 끝나지 않는 열정의 긴 회로가 보인다.
<아모레 아모레미오>는 그렇게 영원히 여성을 찾아 떠나는 남자의 외로운 사투를 마지막으로 산뜻한 결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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