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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열의 무용이야기

[컬럼,논단] 강철나비, 강수진은 빛났다/강수진 & 인스부르크발레단 <나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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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1 20:04 7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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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 인스부르크발레단 <나비부인>
    강철나비, 강수진은 빛났다 


  놀라웠다. 나이 오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발레 무용수가 어떻게 저런 춤을 출 수 있을까?
  7월 한국 춤계의 가장 큰 화제는 인스부르크발레단(Tanz Company Innsbruck)이 내한해 가진 발레  <나비부인> 공연(7월 4-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평자 4일 관람)이었다. 우리에게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널리 알려진 인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인구 11만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비엔나, 잘츠부르크와 비교해 보면 '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 보다는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관광객으로 더욱 붐비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스부르크발레단 공연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순전히 무용수 강수진 때문이었다.
  발레 <나비부인>은 인스부르크발레단 예술감독인  엔리케 가사 발가(Enrique Gasa Valga)가 무용수 강수진을 위해 안무한 작품이다. 한 무용수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강수진 이외의 무용수는 결코 춤출 수 없다고 선언한 점이 여타 작품의 제작배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따라서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강수진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2013년 10월 19일 인스부르크에서의 초연 시 10회 공연 모두를 원 캐스팅으로 발표하면서, "만약 강수진이 아파 공연을 못하게 될 경우 다른 무용수를 대체하지 않고 공연 자체를 취소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한 안무가의 그 두둑한 배짱. 과연 강수진의 춤과 연기가 이 겁 없는(?) 안무가의 기대를 받쳐줄 것인지 관객들의 시선은 바로 그 지점에 쏠려 있었다. 

  발레 <나비부인>에서는  1부와 2부 합쳐 90여분 동안 적지 않은 2인무를 볼 수 있었다. 오페라 <나비부인>이 드라마틱한 구조에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라면, 엔리케가 안무한 발레 <나비부인>은 철저하게 전설의 게이샤 초초상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게이샤 초초와 함께 주요 배역인 그녀의 남편 핑커톤 조차도 강수진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그 존재감이 여지없이 무디어졌다. 
  안무가가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을 발레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장치는 크게 세가지로 보여졌다. 운명의 양면성과 싸우는 강한 주인공의 캐스팅(강수진), 두 가지 세상의 대면을 위한 장치로 사용된 타악기- 대북(다이코)과 드럼 등의 라이브 연주와  일본의 현대춤인 부토의 투입, 그리고 상징적인 인물인 YIN과 YANG의 설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안무가가 작품 속에 담고자 했던 문화간의 갈등, 현실과 이상의 갈등, 그리고 사랑과 놀이의 갈등은 이들 두 인물, 두 명의 여성 무용수가 춤춘  YIN과 YANG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안무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초초상을 수줍어하고 감성적이고 그러면서도 섹시하고, 자존심 강한 여인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안무가의  해석 -연약하면서도 감성적이고, 당당하고 강한 나비부인-은 그녀가 운명의 양면성과 싸우다가 후반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해방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구도에서도 드러났다.

  이는 강수진이 음과 양의 역할을 맡은, 초초상의 마음을 대변하는 두 명의 캐릭터 YIN과 ANG과 함께 추는 3인무, 자결하기 직전에 추는 독무, 핑커톤과 이별을 암시하는 마지막 파드되와 함께 작품 전편에 걸쳐 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까지도 감지하게 하는 춤에서도 드러났다.

  남편이 곧 돌아오는지 잘 확인할 수 있도록 바다가 잘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바위가 있는 산과 오두막을 위치시킨 게이샤의 집(세트 디자인 Helfried Lauckner), 일본의 종이미술에 영향을 받은 의상(Eva Praxmarer)도 시각적인 볼거리를  더해 주었다.
  발레 <나비부인>은 스페인 출신의 안무가에게 보여진 이국적인 일본의 색채가 춤과 캐릭터 사이에서 정교하게 맞물리지 못하고 있고, 강수진과 핑커톤의 2인무 구성에서 기존 발레 작품의 움직임과의 유사한 동작이 여러 군데서 보여지는 안무에 대한  아쉬움을  주인공 초초상을 맡은 빼어난 발레 무용수의 열연으로 달래주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바로 대한민국의 강수진이란 경외감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을만했다. 

  안무가가 특정한 무용수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더구나 짧은 소품이 아닌, 한 시간이 훨씬 넘어가는 전막발레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안무가와 무용수의 관계는 무용수에 의해 안무가의 작품이 더욱 빛날 수 있고, 안무가에 의해 무용수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될 수도 있다. 좋은 음악이 발레 작품을 더욱 빛내고, 훌륭한 안무가와 무용수가 작곡가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안무가에게 무용수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발레 <나비부인>에서 강수진은 안무가의 춤을 빛나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녀의 존재감은 작품 전편을 통해 무대를 압도했다. 강수진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강철나비'란 별명이 왜 무색하지 않은지, 이 작품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강수진은 정말 나비처럼 사뿐하게 그녀의 몸을 온통 춤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오페라 <춘희>의 배경이 된 '동백 아가씨'가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에 의해, 무용수 강수진에 의해 명품 발레 <까멜리아 레이디>로 탄생했듯이, 오페라로 유명한 <나비부인>이 월드스타 강수진에 의해 새로운 발레, 또 하나의 강수진표 랜드 마크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무가와 무용수 모두 서로 상승작용을 통한 좋은 궁합을 이루어낸 배경에는 두 아티스트 사이의 절대적인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보였다.

  인스부르크발레단(Tanz Company Innsbruck)은 모두 16명 남여 무용수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감독인 엔리케 가사 발가와 인스부르크발레단은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깊다. 한국의 발레 관객들 앞에서 무용수로서 또 안무가로서 엔리케는 이미 여러 차례 공연을 가졌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강수진과 친구들” 갈라 공연 때 강수진이 그를 초청 무용수로 뽑아 내한공연을 했었고, 2012년 발레 EXPO 서울국제발레 페스티벌(예술감독 박인자)에서 인스부르크발레단은 엔리케가 안무한 <카르멘>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우리나라 안무가 신창호의 <No Comment>와 <Platform>을 인스부르크발레단의 정기공연 레퍼토리로 공연하기도 했다. 2007년 갈라 공연에서 본 작품을 엔리케가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선택한 경우였다. 지난해 가을 인스부르크발레단의 무용수들은 한국의 무용수와는 <나비부인>을,  한국의 안무가와는 <Platform>을 동시에 연습했었다. 순수예술에서의 한류의 전형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수년 동안 인스부르크발레단과 한국의 무용가들은 이렇게 교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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