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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열의 무용이야기

[컬럼,논단] 리옹 오페라 발레단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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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1 20:16 7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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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석과 크로스오버, 컨템포러리 댄스의 묘미_1]
리옹 오페라 발레단 <지젤>
새로운 캐릭터와 상징, 오리지널 음악과의 조화

-장광열_춤비평
 

  밧줄에 발목이 묶인 채 버둥거리는 지젤. 시작부터 주인공의 캐릭터가 심상치 않다. 베레모를 쓰고, 장식이
달린 빨간색 쿠션을 갖고 노는 것이나 긴 다리를 머리 위로 번쩍 치겨 올리고, 갑자기 솟구쳐 오르거나 뒷걸음
치기 등 그녀의 움직임은 대단히 도발적이다.

  무대미술도 눈길을 끈다. 처음엔 황폐한 산의 형상 같았으나 조금 지나자 한 여인이 알몸으로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것처럼 관능적인 인체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을 사람들의 등장도 이채롭다. 끝이 뾰족한 큰
칼퀴를 든 그들의 군무는 섬뜩할 정도로 투쟁적이고, 커다란 달걀을 들고 나타나는 표정들은 심각하다. 그들은
한바탕 춤의 퍼레이드를 펼치지만 그 분위기는 흥겨움보다 오히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지젤을 둘러싼 주요 인물-알브레히트를 중심으로 한 귀족계급과 힐라리온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대립적인
구도도 읽혀진다. 이는 군무의 동선을 통해 만들어지는 대무(對舞) 구도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양쪽의
사이드 막을 사선으로 활용하는 위치 설정과 커다란 계란을 깔고 앉은 귀족들이 마을 사람들의 춤을 대칭적으로
보도록 한 시선 처리 등이 모두 그런 예이다.

  마츠 에크 안무의 <지젤>은 이렇듯 1막부터 관객들의 상상력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장 꼬랄리와 쥘르 뻬로
안무의 클래식 발레 <지젤>에서 만나는 순수한 시골 처녀의 이미지,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2막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막이 오르면 우선 무대미술부터 한 눈에 들어온다. 코, 손가락, 가슴과 같은 신체의
부위들이 벽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1막과 같은 톤이지만 추상성이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간호사의 등장, 하얀 시트의 침상, 그 주위를 구르고 흔들며 맴도는 일군의 무리들, 붕대를 맨 지젤의 등장을 통해
관객들은 이 공간이 병원임을 금방 눈치 챈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환자들, 침대 밑으로 기어들고, 쿠션을 서로 가지려
다투고 그것을 몸 안으로 쑤셔 넣는 행위 등 그들은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다. 고전 발레 <지젤>에서의 윌리들은
어느새 정신병동에 갇힌 환자들로 돌변해 있다. 

  리옹 오페라 발레단이 내한 공연에서 선보인 마츠 에크 안무의 <지젤>(10월 29-3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평자 29일 공연 관람)은 낭만주의 시대를 대변하는 명작 발레 <지젤>이 다른 세계, 다른 공간으로 진화하는 특별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마츠 에크의 <지젤>은 낭만주의 발레에서 보여지는 환상성은 온데 간데 없고 전체적으로 초현실
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터치했다. 작품은 줄곧 무겁고 비극적인 색채로 치달았고, 관객들의 상상력은 황폐해진 현대인
들의 우울한 감성과 연결되었다. 
 
  잘 알려진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명작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클래식 발레
<지젤>의 재해석 작업 역시 안무가로서는 원작이 갖는 예술적인 완성도,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드라마
발레가 갖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선명한 캐릭터가 주는 선입관을 부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츠 에크는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하고 완성도 높은 재창작을 실현했다. 성공 요인은 드라마 발레의 복잡한
스토리텔링을 단순화 시킨 전개구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변화, 오리지널 발레 음악과 움직임의 매치, 그리고 무대미
술과 소품, 의상 등 극장예술의 여러 요소들을 적절하게 조율한 데 있다. 작품 전편을 통해 이 같은 여러 요소들은
시각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상당히 상징적으로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무가는 주인공 지젤을 집착적인 사랑의 화신으로, 그녀의 역혼녀 힐라리온은 질투와 콤플렉스로, 알브레히트는
주인공 지젤이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인물로 치환했다. 윌리의 여왕 미르타는 정신병동의 수간호사로 냉혹하지만 때론
모성애적인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 그려냈다.

  안무가는 이들 주요 등장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아당의 음악에 실어 원작과는 다른 춤 언어로 조율해냈다. 1막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2인무에서 리프트된 상태에서 오래 지속되는 춤, 힐라리온이 합류하는 3인무, 그리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추어지는 2인무 등은 강한 표현력과 함께 치마로 얼굴을 감싸는 행위 등 마임을 활용한 움직임 구성의 차별성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2막에서 지젤과 알브레히트, 지젤과 힐라리온과의 2인무는 1막과 달리 따쓰하게 느껴졌다. 강한 집착과 무감각적인
사랑, 그리고 질투와 콤플렉스에 둘러싸인 1막의 캐릭터들은 안무가에 의해 용서와 관용이 함께하는 인간적인 인물들로
변환되었다.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2인무, 숲속이 아닌 정신병동을 아라베스크 동작으로 가로지르는 군무, 마지막 알브레
히트가 거의 알몸으로 다시 마을에 나타나는 대목은 안무가의 메시지가 함축된 장면으로, 압권이었다.

  화제의 작품은 오랜 세월을 지나도 그 광채가 발현된다. 마츠 에크의 <지젤>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초연된 지
30여년이 다가오지만 작품 곳곳에 안무가의 번뜩이는 재치가 발견된다. 안무가들은 특유의 상상력과 논리적인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 마츠 에크의 고전 재해석 작업에서 보여 지는 새로운 캐릭터 설정과 오브제를 활용한 강한 상징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마츠 에크는 아무리 복잡한 이야기 구조의 작품이라도 이를 단순화, 상징화시키는 것에 능하다. 그의 안무는 복잡하지
않고 명료하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예기치 않은 반전도 있다. 대머리 백조와 마약중독자 오로라 공주, 담배 문 카르멘의
캐릭터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한 선과 악, 흑과 백의 선명한 대비가 이미 이를 입증했다.

  1막에서 둥근 달걀과 뾰족한 칼퀴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조형적인 대비, 쿠션을 이용해 1막에서는 마치 아기를 낳는
듯한 묘사를, 2막에서는 그 쿠션을 환자들이 자신의 환자복 안으로 집어넣는 행위를 통해 가상 임신을 상상하도록 한 시도
등이 그런 예이다.

  드라마를 갖고 있는 고전 작품의 재해석 과정에서 주인공의 새로운 성격 창조는 작품의 성패를 크게 좌우한다. 리옹
오페라발레단 무용수들은 전반적으로 안무가의 스타일에 잘 적응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첫날 공연 지젤 역을 맡은
Dorothee  Delabie의 춤과 연기는 아쉬움을 남겼다. 자신 만의 지젤을 제대로 창조하지 못했고, 1막과 2막의 상반된 감성
표출, 극을 끌어가는 카리스마 등에서도 부족함을 드러내보였다.

  수년 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 공연에 초대되었던 한국인 무용수 이소라는 1막에서는 마을 사람들로, 
2막에서는 환자로 출연 뛰어난 표현력과 유연성으로 훨씬 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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